김희태 객원기자


흔히 문화재를 접할 때 듣는 말 중 하나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다. 대부분 몇 번이나 같은 장소를 가더라도 알고 보면 다르게 보이는 경험을 하는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와 함께 문화재의 가치는 웅장하고, 화려한 것이 주가 아닌 문화재에 담긴 의미와 이야기를 중점으로 풀어갈 때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핵심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 여부로, 옛 흔적은 우리에게 역사의 관점과 교훈을 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 관항2리 마을에서 바라본 태봉산의 전경     ©편집국

 
대부분 화성시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융릉과 건릉, 용주사 등을 떠올린다.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의 화성시와 수원시가 있게 된 것은 사도세자(장헌세자, 추존 장조)의 현륭원 이전과 정조에 의해 수원 화성이 축성되면서 만들어진 역사의 나비효과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의외로 현륭원의 이전은 많은 흔적을 남겼는데, 대표적으로 정조가 현륭원으로 전배하는 필로 위에 표석과 장승을 세운 점이다. 현재 화성시와 수원시에는 괴목정교와 상류천, 하류천, 안녕리, 만년제 표석이 남아 있는데, 이러한 원행길에 세워진 표석은 ‘정조대왕 능행차’ 행사의 중요한 콘텐츠가 된다.
 
■ 금양지에 세운 표석, 외금양계비가 자리한 태봉산
 
정조 원행길의 표석과 함께 주목해봐야 할 문화재가 화성시에 소재하고 있는데, 바로 외금양계비(外禁養界碑)다. 외금양계비는 태봉산의 남향인 관항리 쪽에서 올라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표석으로, 이정표를 비롯한 안내문 등이 없기 때문에 초행길에 찾기란 쉽지 않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마을의 사당을 볼 수 있고, 그 인근에 표석이 세워져 있다. 표석의 외형은 안녕리와 만년제 표석과 유사한 형태로, 외금양계비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어 명확한 내용을 알기는 어렵지만 보통 능역이 만들어지면 산불로 인한 능의 훼손을 막기 위한 ‘화소(火巢)’가 설치되고, 외곽으로 ‘산림금양지(山林禁養地)’가 설치되었다. 
 

▲ 길가에 세워진 외금양계비의 모습, 금양지의 경계를 표시한 표석으로 추정된다.     ©편집국
▲   전면에서 바라본 외금양계비, 안녕리, 만년제 표석 등과 함께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편집국


따라서 태봉산에 세워져 있는 외금양계비는 금양지의 경계를 표시한 표석으로 보여진다. 이를 통해 당시 현륭원을 중심으로 넓은 금양지가 설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외금양계비’는 최초 표석이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계가 모호하면서 생기는 문제, 즉 나무를 베거나 경작 및 가축을 기르는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운 표석이다. 따라서 금양지의 경계를 표시했다는 점에서 희귀한 금석문으로 표석의 재질은 화강암으로, 앞면에는 ‘외금양계(外禁養界)’가 새겨져 있다.

태봉산성과 인근의 마하리 고분군과 함께 중요한 문화재이지만, 대부분 이 표석의 존재에 대해 모르고 있다. 또한 화성시 향토박물관 수장고에 보관 중인 만년제 표석과 도로공사 과정에서 곧 철거될 안녕리 표석(추후 복원) 등과 함께 현재 비지정문화재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따라서 가능한 한 빨리 안녕리 표석과 만년제 표석, 외금양계비 등의 표석 일괄을 화성시 향토유적으로 지정해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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