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기획]‘모세의 기적’ 뒤에 숨은 눈물

바닷길 상시 통행 요구하는 제부도 주민들

가 -가 +

박기범 기자
기사입력 2019-03-11

▲ 지난달 15일 열린 시민과의 대화에서 바닷길 상시통행을 요구하고 있는 제부도 주민들    © 편집국

 

 

|하루두번 열리는 바닷길, 응급상황
|제부도 주민, 상시통행 개선 기본권

|한국관광 100선 선정, 모세의 기적

 

지난달 15일 서신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린 <2019 시민과의 대화>에 참석한 제부도 주민들이 피켓을 들었다. 피켓에는 주민 기본권을 보장해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주민 생활에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치는 제부도 바닷길을 상시 통행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였다.

 

제부도 주민들은 지난해 화성시에 주민 청원을 제출하고 ‘제부도 바닷길 통행 개선 추진 대책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지속적으로 바닷길 개선을 요구해왔다. 기존 바닷길은 보존하고, 제부도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상시 통행도로를 개설해 달라는 주장이다. 시는 관광 측면에서의 제부도 고유가치 하락과 갯벌 생태계 변화 우려, 경제적 타당성이 낮다는 이유 등으로 바닷길 상시통행이 어렵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그러나 주민들은 바닷길이 막혀 기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며 시와의 대화를 요청 중이다. 

 

바닷길 막히면 119도 접근 불가
제부도 주민들은 스스로 바닷길에 삶의 모든 것이 묶여 있다고 말한다. 올해 70세인 박용옥 씨는 지난해 10월 큰 고비를 넘겼다. 집에 혼자 있던 새벽에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119에 신고를 했지만, 바닷길이 막혀서 올 수 없었고, 심야에는 기상 상황에 따라 응급헬기 출동이 쉽지 않다. 결국 박 씨는 1시간이 지난 뒤에야 평택 해경 경비정을 타고 전곡항을 거쳐 안산에 있는 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좀 더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진단에 따라 다시 아주대 병원으로 이송됐고, 한 달간 입원 후 퇴원했다.


A 씨(75세)도 지난해 갑자기 호흡곤란 증세를 느꼈다. 바닷길이 열리려면 1시간이 더 지나야 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는 바다 건너 송교리 입구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평소 건강했던 A 씨는 골든타임을 놓치고 자택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박 씨는 “경비정이 환자를 이송하는 배가 아니기 때문에 불편했어요. 그래도 저는 병원에 갔으니 다행이지요. A 씨도 제때 병원에 갈 수 있었으면 허망하게 돌아가시진 않았을 것입니다. 언제까지 이웃들의 이런 아픔을 보며 살아야 하는지 정말 답답합니다”라고 말했다.


2017년 11월에는 B 씨의 집에서 음식 조리 중 과열로 화재가 발생했다. 제부 119안전센터에서 출동했지만, 화재 규모가 커 진화가 쉽지 않았다. 불은 점점 크게 타올랐고, 마을 주민들이 모두 나와서 화재를 지켜봤다. 바닷길이 막혀서 육지에 있는 119가 제부도로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바닷길이 열리고 119가 출동했지만 약 165㎡ 규모의 건물 2동은 모두 불에 타 사라진 뒤였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제부도 주민들은 화재가 발생했을 때 신속한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하나뿐인 초등학교 폐지
도시에서 살고 있던 전유라 씨는 첫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남편과 함께 제부도에 들어왔다. 몸이 약한 첫째를 공기 좋은 제부도에서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섬 생활이 조금 불편할 것으로 생각됐지만, 아이가 건강할 수 있다면 다른 것들은 모두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 씨의 결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겨우 100일밖에 안 됐던 첫째가 새벽에 갑자기 고열이 난 것이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보건지소는 이미 문을 닫은 뒤였고, 119는 바닷길이 닫혀 있어서 출동할 수 없었다. 아픈 아이를 바라보는 전 씨의 마음은 타들어 갔다.


전 씨는 “정말 생각도 못 한 일이었어요. 119는 도움을 요청하면 당연히 골든타임 안에 출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 바닷길에 막힐 수 있다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라고 말했다.


다행히 첫째는 큰 탈 없이 제부도에서 건강하게 자랐고, 이제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첫째를 바라보는 전 씨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다. 제부도에 하나뿐인 서신초등학교 제부분교가 학생 수 부족으로 휴교에 들어가더니 지난달 결국 폐지가 결정됐기 때문이다. 바다 건너 서신초 본교로 아이를 보내야 하는데, 하루 두 번만 열리는 바닷길 때문에 등하교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자칫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몇 시간이고 바닷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 보니 제부도 주민들은 경제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육지에 집을 따로 얻어 가족과 떨어져서 지내기도 한다.


전 씨는 “통행로가 개선되면 이런 고민이 해결되고, 제부도 주민들의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지리라 생각해요. 통행 문제만 해결되면 제부도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 최광수 제부도 바닷길 통행 개선 추진 대책위원회 위원장이 제부도 바닷길의 상시통행이 가능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 편집국

 

 

관광객마저 느끼는 불편
제부도는 조수 간만의 차로 하루 두 번 바닷길이 열리는 곳이다. ‘모세의 기적’으로 불리며 한때 많은 관광객들이 바닷길이 열리는 모습을 보기 위해 제부도를 찾았다. 제부도는 바닷길 외에도 아름다운 풍경으로 인기를 얻으며 화성시를 대표하는 관광지 중 하나로 발전했다. 지난 1월에는 제부도의 제부 꼬리길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 관광 100선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관광객들은 캠핑을 떠날 때도 노트북과 각종 가전제품을 가져갈 정도로 ‘편리성’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바닷길이 닫히면 급한 일이 생겨도 나갈 수 없는 불편함은 관광객들에게 제부도 여행을 망설이게 했다.


안창희 제부리 부녀회장은 “제부도 관광객들은 바닷길이 열리는 시간을 맞춰야 하는 것에 가장 불만이 많다. 이 시간이 안 맞으면 예약을 하고도 취소를 한다. 부산도 KTX 타고 당일치기로 가는 시대다. 요즘 관광객들은 불편하면 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주민들이 제부도를 찾은 관광객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바닷길이 갈라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방문했다는 응답은 9명에 그쳤고, 가족 및 친구, 동료들과 친목 도모를 위해 방문했다는 응답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이들 중 98명이 바닷길 통행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광객들은 제부도에 여행을 오고 싶어도 바닷길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제부도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이처럼 상시 통행에 불편을 느낀 관광객들은 제부도에서 숙박하기 보다는 길이 열렸을 때 들어왔다가 잠시 둘러보고 서둘러 나가는 경향이 많아졌다. 그러자 제부도의 상인들도 바닷길이 열렸을 때 손님들을 한 명이라도 더 받기 위해 호객행위가 늘어났고, 상인 간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최광수 제부도 바닷길 통행 개선 추진 대책 위원장은 “손님들이 줄어들자 이번에는 제부도 상인들끼리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손님들이 체류하는 짧은 시간 안에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모으려다 보니 호객행위가 심해졌고 제부도의 서비스 품질이 낮다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아마 제부도의 상시통행이 가능했으면 관광도 더 발전했을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     © 편집국



제부도 고유 가치와 환경 훼손에 대한 우려 제기
그러나 주민들의 이런 요구에 대해 시는 여러 가지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바닷길 상시통행이 가능해지면 제부도의 고유가치가 상실되면서 관광측면에서 치명적 타격을 입을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시는 지난해 제부도와 육지를 잇는 연륙교 설치도 검토했다. 그러나 경제적 타당성이 낮고 연륙교 구조물 설치로 인해 갯벌 생태계가 변화될 것을 염려해 불가 판정을 내렸다.


지난달 열린 시민과의 대화에서 서철모 시장도 “주민 모두가 원한다면 길을 설치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제부도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주민들과 더 논의 하겠다”라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상시 통행도로를 건설할 때, 조망시설과 자전거 및 도보길, 조명시설 등을 설치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렇게 될 경우 통행로 자체가 좋은 관광자원이 되고, 이로 인해 관광객도 증가하고, 기본권을 제약받던 주민들의 삶도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환경 훼손 우려에 대해서는 주민들도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최 위원장은 “기존 도로는 유지하고, 해수 소통구를 설치한 상시통행 도로를 설치하면 갯벌이나 바다에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우려를 극복하고, 주민들의 기본권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시와 지속적인 대화를 원한다”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 화성저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