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백도근칼럼] 2019년 5.18 기념행사 단상

백도근 교수(철학박사)

가 -가 +

편집국
기사입력 2019-05-23

 

 

▲ 백도근 교수(철학박사)     ©편집국


사람은 저마다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억이나 생각, 다른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기억이나 생각,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그것의 근본 원인은 사람의 판단능력자체가 완전하지 않은데 있지만 사물에 대한 충분한 지식에 접근하기가 충분치 않으며, 그리고 저마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데 따른 것이기도 하다. 이 서로 다른 생각과 기억에만 따른다면 사람사이에는 갈등과 대립만이 있게 될 것이지만 다행히도 약속이란 것이 있어서 갈등과 대립을 멎게 하고 우애와 협동도 가능한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인류역사를 들여다보면 약속의 이행과 파기로 점철되어 온 것을 보게 된다. 오래 이행된 약속으로는 이스라엘민족의 ‘십계명’을 들 수 있다. ‘십계명’이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세월 강적들에 둘러싸여 생존을 위협받아온 이스라엘 민족으로서는 내부단합을 위해 10계명을 지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제국주의 시대에 지배민족과 피지배민족 사이에 맺어진 약속들은 정복자들의 힘이 약화될 무렵에는 어김없이 반란이 일어나고 약속은 파기되었다. 


우리민족은  6.25라는 끔찍한 동족상잔을 겪었다. 이 때문에 20세기 후반에 들어 세계조류가 이전 반세기 동안에 야기된 모든 갈등을 풀고 - 소련이 철의 장막을, 중국이 죽의 장막을 허무는 등 - 공존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우리 민족은 굳건히 휴전선에서 무기를 맞대고 냉전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6.25가 북조선이 대한민국을 침략함으로써 일어난 동족상잔이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남북갈등의 원인이라면, 5.18은 구(舊) 군부의 통치가 대통령의 시해사건으로 막을 내리는 시점에서 신(新) 군부가 재집권을 위해 광주에서 자행한 시민학살사건이었다.


어쨌든 5.16은 구 군부통치의 끝자락에서 5.16 주역들의 내부적 갈등에서 비롯되어 시해와 처형 후에 마무리 된 뒤 ‘군사쿠데타 사건’으로, 신군부의 12.12 사건과 5.18 무력진압은 5공의 종말과 함께, 시민을 학살한 주동자 두 사람(전두환・노태우)에 대한 사형을 판결한 뒤 특사로 석방하고 나서 광주시민의 저항은 ‘민주화운동’으로, 12.12사건과 5.18 무력진압은 각기 ‘군사반란’과 ‘내란죄’로 그 의미가 정해진 뒤 마무리된 사건이다.


그러나 이후 5.16에 대한 ‘군사쿠데타’ 규정은 5.16의 주동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한 번 크게 흔들렸고, 신군부의 5.18 무력진압에 대한 ‘내란죄’ 규정은 주동자 전두환이 살아남아서 회고록을 집필하고, 그 잔당들 일부가 여전히 북조선군의 개입설을 주장하는데다가 이들을 주요 지지 세력으로 둔 제1 야당으로 인하여 여전히 ‘민주화운동’이란 성격규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2019년 5월 18일은 광주민주화 운동이 발발하던 그날로부터 39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1980년의 그날에 희생된 수많은 영령들을 위로하고자 모인 망월동의 기념행사에서 예전과 다르게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자들이 끼어들어 ‘5.18 민주화운동’의 의미에 혼란을 야기하는 상황을 바라보면서 지금의 혼란 상황이 어떻게든 정리가 되어서 다음 40주년 기념행사에서는 모두가 한 마음으로 ‘5.18 민주화운동’이란 숭고한 합의를 수용해서 진정한 추모의 행사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관련기사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 화성저널. All rights reserved.